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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레즈비언 연구의 진전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에서 시작하여 퀴어 이론이라는 이름이 성립하기까지의 과정에서 크게 공헌한 연구성과는 주로 80년대에 나왔다. 게이-레즈비언 비평이나 섹슈얼리티 연구라고도 불리는 연구가 화려한 성과를 내어 퀴어 이론이 성립할 수 있는 바탕을 정리한 것이다. 현재 퀴어 이론에 있어서 주디스 버틀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적인 연구자인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연구성과를 내었다.
섹슈얼리티 연구가 이룬 성과 중 하나는, 우리들이 현재 생각하고 있는 섹슈얼리티란 근대의 섹슈얼리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은 조금이라도 보편적이거나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푸코의 지적을 받아들여 개별적인 시대와 장소에 있어서의 성의 문제는 어떻게 인식되었는지 역사적 조사를 한 것이다. 말하자면 "성의 역사"에서 제기된 이론에 대한 실증 연구를 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 연구는 성과 연애의 문제에 대한 현대의 인식이 어떤 시대에도 똑같이 들어맞을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우리들의 태도를 비판한다.
예를 들어 제프리 윅스의 일련의 작업은 영국에 있어서의 성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조사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설사 성욕이라는 것이 일종의 본능으로서 존재한다 손 치더라도, 그 성욕이 현실에서 어떠한 행동으로 표출되는가는 시대, 장소, 계급, 성차에 따라서 무척이나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또한 그는 사법제도를 조사하였다. (이것도 푸코가 언급한 것이지만)19세기까지 동성애라는 것은 혼외정사를 포함하는 다양한 성적 이탈행위의 하나로 치부되었고 그리하여 하나의 행위로써 인식되었지만, 그 후 인식의 변화가 생겨 다른 성적 '일탈' 행위와는 다른 종류의 '이상'이라고 인식되면서 동성애자라는 인격 개념이 확립되었다고 윅스는 지적한다.
행위개념에서 인격 개념으로의 변경은 동성애를 어떠한 '죄'로서 인식하느냐에 있어 큰 차이를 가져온다. 동성애가 행위라면 가능성으로는 누구나가 행할 수 있기에 삼가야 할 것이 되는 것에 반하여, 그것이 인격이라면 행하는 주체는 '특수'한 인간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된다. 물론 그것은 어려운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즉, 동성애자에게는 동성애 특유의 문화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동성애자에 의한 그리고 동성애자를 위한 인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인격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릴리안 패더만은 레즈비언에 대하여 위와 같은 연구를 했다. 적어도 현재의 시선으로는 레즈비언이라고 불리는 관계가 '로맨틱한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19세기까지 빈번히 관찰됐고, 19세기 후반에는 '보스턴식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끼리 결혼하고 평생 같이 사는 것이 인정되었었다. 그러한 것이 '이탈'이라고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가 시작되고 10~20년 사이라고 그녀는 지적한다.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지적은 유명한데, 그것은 문학사상 반복되어 논란이 된 수수께끼인 그녀의 연인은 누군가에 대한 것이다. 디킨슨의 한 편지에 당신만을 다른 누구보다 평생 사랑하겠다고 쓴 부분을 '문자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한, 그것은 그녀의 동성 친구일 수밖에 없다고 패더만은 얘기한다. 그것이 수수께끼인 이유는 단순히 그 친구가 여성이기에 사전에 선택지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으로, 우리들의 독해는 그와 같이 자의적이라고 말한다.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는 동성애라는 것을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려 하지만, 그것은 20세기 이후의 '편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영어에 있어서 헤테로섹슈얼이라는 말은 호모섹슈얼보다 나중에 발명되었다는 (그것도 20세기 초엽의 일이지만) 사실은 자주 지적되는데, 우리들이 동성애를 인격화하여 그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반대로 섹슈얼리티라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인격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히 이성애도 인격 개념으로 간주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은 일반적으로 성의 중심화라는 사태가 발생한 결과이다.
간단히 말하면, 성의 중심화란 성관계만이 인간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형태라고 생각하는 사고양식을 의미한다. 우리들의 다수는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으나, 그 도식이 광범위하게 성립되려면 많은 전제가 필요할 것이다. 결혼에 있어서의 성관계가 최고의 커뮤니케이션이 되려면, 그 결혼이 자유 연예를 통한 베스트 파트너와의 결합이어야만 한다. (즉, 결혼의 대부분이 맞선이나 정략결혼이라면, 배우자보다 친구가 중요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 성관계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려면, 피임기술이 넓리 퍼져야 한다. 왜냐하면 성행위가 상시 임신의 가능성에 노출된다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식행위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것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게 된 섹슈얼리티의 탄생은 상기의 조건이 정비된 20세기 이후의 사건이라고 존 데밀리오와 에스텔 B 프리드만은 미국을 예를 들며 이야기한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