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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의 탄생 - 푸코의 전략
퀴어 이론이란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인데, 그것이 성립하게 된 큰 계기가 된 것이 주디스 버틀러의 저서 "젠더 트러블"(1990)이다. 그 책에는 레즈비언이나 게이의 시점으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하여 고찰한 이론이 기재되어 있다. 그 이론들은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섹슈얼리티'의 개념을 정의한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를 잇고 있다. 그리고 테레사 드 로데티스라는 사람이 1991년에 쓴 '퀴어 이론 - 레즈비언과 게이의 섹슈얼리티'라는 논문이 퀴어 이론의 명칭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퀴어이론이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 키워드, 즉 레즈비언, 게이, 젠더, 섹슈얼리티, 퀴어 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고 재정립하자는 게 그 이론의 제안이기 때문이다. 퀴어(queer, 이상한, 기묘한)라는 말은 속어로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인 멸칭으로 사용되었었다. 그러한 것을 전복시켜서 동성애자 자신이 전략적으로 다시 사용하려는 운동이 그 명칭의 유래이다. 더군다나, 섹슈얼리티의 경우는 정의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성욕이란 대체적으로 동물로서의 인간이 자연적으로 갖게 된 본능이라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데, 푸코는 우리들의 성적인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동물적 '성욕'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섹슈얼리티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연애를 하는 사람이나 연애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연예가 깊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말로서 '진도'라는 말을 쓰곤 한다. '진도가 많이 나갔느냐?' '진도 빼야지' 등과 같이 쓰이기도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끝까지 갔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즉 데이트를 할 때, 손을 잡고 다음으로는 키스를 하고, 그다음은 페팅을 하고 마지막으로 섹스까지 가는 여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 '진도가 나가다'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키스보다 페팅이, 페팅보다는 섹스가 뭔가 정도가 높은 어떤 것이라고 우리들은 '자연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단순히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 현재 진행중인 많은 커플들은 그 '진도'가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가를 통하여 서로의 친밀도나 사랑을 측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자면 그 '진도'라는 것은 아무래도 단순히 습관적으로 성립된 사고법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든다. 실은 연애에 있어서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페팅을 하고 종착점으로서의 섹스에 이른다는 사고는 퀴어 이론 이전부터 '성기중심주의'라며 비판받아왔다. 그것은 성행위에 있어서 성기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행위만을 중요시하고, 다른 한 편 그렇지 않은 것들을 열등한 행위로 취급하는 사고법을 의미한다. 즉 키스보다 페팅이 보다 본질적이라고 생각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예를 들어 손을 잡거나, 그저 지긋이 서로 바라본다거나, 같은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면을 취하는 것은 어떠한 것들을 의미하는가 의문이 든다.
성기중심주의는 성행위에 있어서 순서를, 계급을 위계를 만든다. 성기중심주의를 비판하자면 위에서 말한 예들도 중요한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성기중심주의 비판은 성애의 행위를 침실이라는 한정된 것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성애는 이불속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성기중심주의를 지탱시키는 의견은 성행위를 성애의 행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식 행위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성행위의 본질은 2세의 생산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진정한 성행위란 생식 행위여야 한다는 명령이나 소원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많은 경우 오히려 아이를 만드는 것 이외의 목적으로 성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차세대 재생산을 포함한) 그 어떤 목적을 위해서 성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행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며 성애의 행위로써 성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성애의 행위로서의 성행위는 단지 본능이나 성욕만으로 유도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그 어떤 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생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인가. 푸코는 그 어떤 것을 섹슈얼리티라고 말한다.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까지의 기술을 이성애에 대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지금까지 기술한 것은 동성애를 설명하고자 할 때 더욱 명석하게 이해될 것이다. 동성애의 성행위는 생식 행위가 아니기에 명확히 성애의 행위이다. '예외적'이라고 간주되는 동성애의 고찰에서 출발하여 그 고찰에서 얻은 식견이나 지식이 이성애에 있어서도 부합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최종적으로 우리들이 이성애에 대하여 '자연적'이라고 생각하는 갖가지 습관이 왜 '자연적'이지 않은 '픽션(fiction)'인지를 비판적으로 명확히 하는 것. 그것이 퀴어 이론의 기본적인 절차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