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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의 회로

 

 

 소쉬르가 현대 언어학을 확립했을 때 제창한 언어 모델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말의 회로'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20세기에 나타난 최초의 커뮤니케이션 모델이라고 생각되는 도식이다. A 씨와 B 씨가 대면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둘이서 말을 주고받는 것을 서로 마치 전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대치시키며 상상해 보자. A 씨가 말을 하면 공기의 파장을 통해서 B 씨에게 전달되고, B 씨는 머릿속에서 A로부터 건너온 음성 기호를 관념의 형식과 조합하여 기호의 의미를 이해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B 씨가 A 씨를 향하여 같은 프로세스로 말을 돌려보낸다. 이처럼 통화의 형식을 모델로 삼아 사람들이 말을 주고받는 회로로서 인간의 언어활동을 설명하려는 도식이 '말의 회로'이다. 

 

 소쉬르는 언어기호를 '시니피앙(음향 이미지)'와 '시니피에(관념)'의 결합으로 생각했다. 가장 간단한 언어활동이란 A와 B라는 각각 개인인 두 사람, 즉 '화자 / 청자' 사이에 성립하는 언어 기호의 교환이라로 생각한 것이다. 언어 기호에 있어서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연합은 '화자 / 청자'의 뇌 속에 있는 심적 결합으로서, 화자 A는 그 심적 결합의 프로세스에 있어서 '시니피에(관념)'와 '시니피앙(음향 이미지)'을 머릿속에서 결합시켜, 자신의 '발성'의 생리적-물리적 과정을 통하여 화자 B 쪽으로 기호를 보낸다. 청자 B는 '청취'에 의해 받아 든 기호의 '시니피앙(음향 이미지)'를 뇌 속에서 '시니피에(관념)'에 결합시킴으로써 이해한다. 

 

 그러한 도식 속에서 A와 B의 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멘탈 프로세스이고, 상호 발음하고 청취하는 과정이 생리적-물리적 프로세스라 할 수 있겠다.  그것에 대하여 회로를 통해 음성화하여 송신하는 것이 언어 기호를 현동화(現動化)한 것으로서의 '말(파롤)'이다. 

 그것이 '말의 회로' 도식이다. 말을 주고 받는 것을 서로 전화 통화하는 관계인 '전화 모델'을 실마리로 개념화한 것이다. 그리고 소쉬르가 인간의 언어활동을 그와 같은 모델로서 생각하려 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에디슨이 발명한 포노그래프에 의한 음성 기록 장치를 사용하여 연구하고 전화 모델로 그 회로를 모델화 하려 한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19세기 후반에 발명된 미디어 기술에 기반하여 언어를 연구하려 했다는 그의 자세이다.

 

 소쉬르 이전의 19세기 역사언어학이란 언어를 오로지 기록하기만 하거나 고문서에 기록된 말의 기록을 문헌 조사하여 연구하는 것이었다. 문자를 수단으로 하여 언어를 연구하고 말이 어떻게 변화하였는가를 역사적으로 연구한 것이 역사 언어학이다. 소쉬르의 정리에 의하면 그러한 언어학 연구는 통시태(通時態, diachronique) 연구인 '통시태 언어학(la linguistique diachronique)이라고 불린다. 그러한 통시적 관점에 전적으로 기반한 언어학의 지평에서, 소쉬르는 전화 모델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자리에서 A 씨와 B 씨가 서로 같은 시점에 말을 주고받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같은 시점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또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모델화하고 이해하려 하는 언어 연구를 시도하였다.

 

 그것이 언어를 화자의 발화 상태와 커뮤니케이션의 동시성을 연구하는 언어의 '공시태(共時態, synchronie)' 연구라는 것이고, 소쉬르에 의해서 '공시태 언어학(la linguistique synchorique)이라 불리우게 된다. '말의 회로'는 언어라는 것을 공시성에 의해 연구하는 공시태 언어학이야 말로 언어학의 원리적인 출발점이고, 언어의 통시태 연구는 공시태 연구의 연장선상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는 공시태 모델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뇌 모델

 

 그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19세기 후반에 발명된 테크놀로지인 전화나 음성해석장치가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반언어학 강의"를 보면 당시 새롭게 알려지게 된 과학적 지식으로 뇌의 연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에도 뇌는 중요한 첨단의 연구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데, 그 당시는 언어 중추의 발견으로 인해 언어를 연구한다는 것은 뇌를 연구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비약적으로 고조되어 뇌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던 시대였다. 브로카 영역이라든가 베르니케 영역이라고 불리던 언어 중추가 언어활동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시대였던 것이다.

 

 소쉬르가 '말의 회로'를 설명한 부분을 읽어보면 언어 활동을 연구한다는 것은 A 씨, B 씨의 뇌 속에서 어떠한 메커니즘이 활동하고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즉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의지한 동시적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있어서 뇌를 언어활동의 중추로 생각하며 어떠한 일이 그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소쉬르가 제창한 새로운 언어학의 형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소쉬르가 일으킨 언어연구에 있어서의 혁명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언어를 인간 정신의 역사와 같은 것으로 취급하며 그 진화와 계통에 관한 역사적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행하여지는 인간 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언어활동을 인식하고, 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요소로서 '언어기호'의 활동을 연구하는 것이 언어학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신적인 생각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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