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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적 텍스트의 특권성 부정

 

 전통적인 역사주의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신역사주의의 실천가들이 자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서적 중에  E. M. W. 틸야드의 "엘리자베스 조(朝)의 세계관"이란 것이 있다. 그 서적에서 틸야드는 '질서' '존재의 거대한 사슬'과 같은 키워드를 축으로 엘리자베스 조 당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 의하여 '당연한 전제로서 공유되고 있었던 세계관'을 제시한다. 

 

 틸야드에 의하면 그러한 세계관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보통은 일부러 언급되는 일은 없었고, 노골적으로 교훈을 이야기하는 경우 정도에만 언급되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필두로 한 당시의 문학작품은 모두 그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것을 바꿔 말하면, 그러한 세계관에 걸맞는 텍스트가 훌륭한 것이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텍스트이지만, 한편 기존의 질서에 반대의견을 내세우는 텍스트는 당시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지 않고 보잘것없으며 연구할 가치가 없는 텍스트(틸야드의 말을 빌리자면 '수상하고 의심스러운 팜플렛이나 통속적 생활을 그려낸 소설')라는 것이 된다.

 

 그에 대하여 신역사주의의 논객들은 그러한 세계관이 '노골적으로 교훈이 진술되는 경우에 명시적으로 언급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한 교훈가들이 사람들에게 굳이 세계는 이렇다 저렇다 하며 설교를 한다는 것은, 반대로 사람들에게 그것이 공유되고 있지 않다는 증좌가 아닐까. 오히려 그런 것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관이 대두하려 하고 있기에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설교하려 들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전통적인 문학연구에 있어서 경시되어 온 '수상하고 의심스러운 팜플렛이나 통속적 생활을 그려낸 소설'이야말로 기존의 질서를 흔들어 새로운 사회를 탄생시키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한 주변적인 텍스트를 단서로 '문학적'인 텍스트를 다시금 읽어보면, 사실은 '문학적인' 텍스트에도 주변적인 요소가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 명확해지는 것은 아닌가.

 

 

 

   권력의 작용

 

 이상에서 본 것 처럼, 신역사주의는 단순히 문학 텍스트를 탐미주의적으로 소비하기보다는 오히려 문학 텍스트가 어쩔 수 없이 포함시키는 권력 작용을 분석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신역사주의적 비평은 어떤 특정한 문학 텍스트의 심미적 가치 ('문학성')를 판정하기보다는, 그 텍스트가 국가권력과 문화적 제형태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떠한 작용을 하고 있는가를 판별하고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앞서 기술했듯이 신역사주의는 처음에 초기 근대의 영국 연극연구 분야에서 시작을 알렸는데,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초기 근대에 있어서의 권력의 연극성 - 극장이, 권력을 표상하고 정통화 하는 장소였다 - 때문에 그러한 연구 수법이 특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권력과 문화적 제형태는 어떻게 하여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인가. 신역사주의에 의하면 권력은 문학이나 연극과 같은 문화의 제형태를 가지고 와서 지배층의 이해득실 논리에 지나지 않는 그것들을 마치 사회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처럼 표상하여 기존의 지배 사회질서를 정통화하고 강화한다(consolidation = 기존의 지배적 사회질서가, 그 재배적 사회질서 자신을 영속화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수단). 그렇게 함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기존의 사회질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라는 것 또한 지배층에 의하여 그 입장에서만 달콤한 요소가 취사선택되어, 현상(現狀)으로 귀결되는 필연적인 과정이라며 날조된다. 그것으로 인하여 현상은 불가피한 것으로서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당연하게도 그것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모순이 남는다. 그러한 모순은 억압되면서도 기존 질서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게 된다(subversion = 기존의 지배적 사회질서의 전복). 그것들은 애초 지배적 사회질서가 낳은 모순이지만, 지배층은 그것을 외적인 '위협'으로 몰래 바꿔치고 사회질서를 혼란으로 내모는 것으로서 악마화 한다. 본디 사회가 내부에 안고 있던 모순이었던 것을, '외부로부터의 위협'으로 치환하여 사회의 동의 아래 그것을 억압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기존 질서를 강화하는 것이다(containment = 전복적 압력의 봉합).

 

 이렇듯 신역사주의 비평에 있어서는 전복적 요소가 최종적으로는 봉합되어버린다는 것이 강조된다. 변혁으로의 전망이 결여된 그러한 비관주의적 권력관은, 공통된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면서 오히려 문학 텍스트에 있어서의 전복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영국의 문화 유물론으로부터 자주 비판받고 있다. 또한 가치중립성을 사칭하는 보수적인 문학 연구가들로부터의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문학 텍스트를, 그것이 탄생한 사회의 권력 네트워크의 상호작용적 관련성으로 생각한다는 신역사주의적(=문화 유물론적) 자세의 중요성은 더이상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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