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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들과 훌륭하고 우수하다고 인식된 것들은 드리없이 감상되고 또 논하여져 왔다. 그러나 그 감동의 방식이나 표현 방법은 실로 다양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는 종교나 도덕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름답고 선한 것'(kalokagathon)이라는 합성어를 사용하여, 인생에 도움이 되고 인생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 선(善)이자 미(美)라고 논하여졌다. 그것은 이미 '선'과 '미'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성립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전제로서 플라톤은 미 그 자체는 신에 의해서 분배된 것이기에 그것을 실현하는 예술은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의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제시했다. 그리고 중세의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美를 '신의 빛'으로서의 완전성이나 조화의 광채 속에서 찾았다.
그러나 근대 유럽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고전부흥운동인 르네상스 운동과 로맨티시즘의 고양을 통해, 미를 신학이나 그것에 기반한 도덕에서 분리하는 태도가 확립됐다. 로맨티시즘의 고양 속에서 그리스도교가 사교로 여기고 이단이라고 회피하던 스피리추얼리즘(spiritualism)에 기반한 작품도 많이 만들어졌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고대 그리스 · 로마의 '고전예술'은 그것이 탄생했을 때에는 신들을 향한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와 같은 다신교나 그것이 탄생시킨 종교예술을 그리스도교가 지배하는 세계의 한 복판에서, 그 가치질서와 다른 가치로 내세운 것이 유럽의 예술 르네상스이고 로맨티시즘이었다. 그리스의 신들이나 님프(정령)들이 재생된 회화는 다신교의 종교화가 아닌 예술로서 인정되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교회와 손절한 예술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술이 자연과학의 발달과 손을 잡고 발전한 것을 '르네상스'라 부른다.
학문이나 과학의 발달은 그리스도교 내부로부터 준비되어 있었다고 말해도 좋다. 신앙심을 중요시 여기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에 비해,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의 통합 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신학화를 도모했다. 그것은 신에 대한 신앙심과 신이 만인에게 동등하게 부여한 이성의 작용을 균등하게 인정하고, 그 두 가지를 통합한다는 의미를 가졌다. 교회는 반세기에 걸쳐서 아퀴나스의 생각이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일치한다고 인정했다. 그 13세기는 자유 7과(liberal arts)가 신학 이외의 모든 학문의 기초로서 흔들리지 않는 지위를 확보한 시대이기도 했다.
(다음 편에 계속)